코흘리게 시절 내가살던 고향은 꼬부랑 황톳길 시골마을이었다.
바지 끝단은 언제나 흙투성이였지만 뚝방 아래 연잎은 소나기를 막아주던
우산이었고 검은 고무신은 하교길 송사리를 담는 그릇이
되어주곤 했었다.
대부분에 집들이 초가지붕에 하루 두끼도 버거울 많큼 가난하던 동네로 텃밭과
다랭이 논에 아버님도 공무원이셨지만 우리 역시 풍족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다.
수입의 대부분을 자식들 학비로 썼기 때문으로 등잔에 라듸오마져 없었음에도
그 시골구석 아낙이 자식들을 모두 서울로 보내 공부 시켰으니
참으로 대단한 어머니셨다.
그립기만한 그 시절 이지만 이해 불가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집사방이나 밭둑 등에 과일 나무들을 심어만 둬도 아이들 주전부리로 충분했
을 일인데 밤 한톨마져도 왜 그리 귀했던지 소풍이나 운동회 날
줄에 꿴 몇톨이 전부였으니 ..

박박머리 기계충 자리에 소매끝은 반질이었지만 그래도 한가위가 다가오는
이때면 다래며 머루에 오디, 까치밥까지 학교갔다 오기가 무섭게
산으로 들로 숙제할 시간도 없었다.

고소득 신품종인 까닥도 있지만 슈퍼 도라지를 심어 헛골을 따라 이러 저런
것들을 뿌려뒀던 것도 참외를 몇 지게씩 따던 참봉 집과는 달리 우리는
퇴비장 개똥참외 하나도 왜 그리 귀했던지 누가 따갈까 풀잎으로
덮어두며 조석으로 살피곤 했던 추억에서였다

자연으로 돌아오며 마당에 과일나무부터 심었던 것도 초여름이면
주렁주렁이던 면장딸인 영미네 우물가 자두나무가
그리도 부러웠던 때문이었다 ..

지금은 씨며 묘목들로 가을마다 쏠쏠히 부수입까지 올려주고 있지만
철조망을 마다하고 농장 경계를 따라 탱자나무를 심었던 것도 하교길이면
과수원집 울타리 아래에서 탱자를 주워 어깨에 맨 책보까지
던져두고 구슬치기에 열을 올렸던 추억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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